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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2-08 03:53

이용후기 비제이벳

글쓴이 : 이필창

그는 약간 휘청거리며 옆에 있는 나무 사다리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장군, 나는 예서 지켜보려는 것이오. 이따가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대왕을 보지 못할 테니 말이네.”

사내가 중얼거렸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리 생각이 없수? 그리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이오? 그리고 이따가 대왕이 오면 어르신은 자연히 앞에 가서 보게 될 텐데, 괜히 일거리 만들지 마시오. 경고하는데! 피라도 흘리면 부정 타니까 조심하란 말이에요!”

사내는 도끼를 흔들며 흰자위를 까뒤집고는 이내 뒤돌아 뒷짐을 진 채 떠났다.

이장수는 함박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도 웃음기가 서렸다.

멀리 청년 장군 몇몇이 그 사내의 옆에서 준비 상황을 보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악래 사령관’이라고 불렀다.

이장수는 고개를 살살 흔들고는 뒷짐을 진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재미있는 순간이 오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여와묘는 일찌감치 경계 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이렇게 성대한 행사를 벌이면 자연히 수많은 범인이 구경하러 올 테고, 여와묘에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몰려들 테니 말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대왕을 환호하였다. 어느새 화려한 장포로 갈아입은 이장수가 종이 인형이 상시 대기 중인 나무 가옥에서 걸어 나와 뒷짐을 지고 대전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장병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종이 도인의 기세가 비범하고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아보겠으나 정체를 알 수가 없어 급히 조금 전 그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를 찾아갔다.

“하이고!”

악래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와 이장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목소리를 한껏 억누른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요?! 대왕이 오셨다. 여기가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아니…….”

“아니는 무슨 아니! 여봐라, 끌어내라!”

이장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평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자신이 이곳의 명예 주지이자 오늘 제사의 담당자라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때, 갑자기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사 대인 아닙니까!”

악래가 뒤를 돌았다. 이장수가 태연하게 웃으며 양손을 소매 사이에 찔러놓고 그 자리에 조용히 섰다.

멀지 않은 곳에 미리 이곳에 와서 곳곳을 점검하고 배치했던 노신 하나가 한껏 흥분하여 달려왔다. 혈색 좋은 노인네, 이장수의 종이 도인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거의 눈물까지 흘릴 지경이었다.

“대사 대인! 정말로 대인이셨군요! 어찌 예 계십니까? 악래, 당장 물러나지 않고 무엇 하나! 네 흉악한 몰골을 보고 대인께서 놀라면 어찌하라고!”

“내 조가성을 떠나 예서 지내고 있네. 매일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있나보구려.”

“하하, 저를 아직 기억하고 계셨군요. 대인께서 도와주신 덕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겁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대왕께 아뢰고 오겠습니다!”

노신은 곧바로 뒤돌아 종종걸음으로 마당 앞으로 뛰어갔다.

“음?”

무식하게 체격만 큰 사령관이 고개를 숙인 채 이장수와 아까 그 노신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벌써 민머리가 되어가는 고동색 머리통을 벅벅 긁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곤란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검은색의 널찍한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걸어왔다. 흐뭇한 얼굴을 한 채 이장수를 본 사내는 두 눈을 한껏 반짝거렸다.

바로 오늘의 제신이었다.

이장수는 고래를 숙이고 공수로 예를 행하였다.

“대왕을 알현하옵니다.”

“하하하하! 대사, 여기 있었구려! 과인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오?!”

제신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오자 뒤에 수많은 문신과 무장도 따라왔다.

“…….”

마치 나와 아주 친한 것처럼 말하는군.

가까이 오자, 비제이벳 고명대신이 이장수와 아는 체를 했다.

“대사가 말도 없이 떠나는 바람에 과인과 태사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시오? 여전히 정정한 모습을 보게 되니 마음이 놓입니다, 마음이 놓여요.”